감정만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진실한 그들
버림받은 천사들
(에이나르 마우르 그뷔드뮌손 지음 | 정지인 옮김 | 낭기열라 펴냄)
《버림받은 천사들》은 아이슬란드의 소설가 에이나르 마우르 그뷔드뮌손이 1995 년 발표한 소설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조현병(調絃病·정신분열병을 2012년부터 이렇게 부른다. 나병을 한센병으로 바꿔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환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역시 조현병 환자인 ‘나’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말하는 주인공은 소설이 시작할 때이미 죽어 있어서, 옛 친구를 언급하며 “내가 죽었을 때는 (그가)내 장례식을 주관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장례식도 아주 훌륭 하게 치러냈다”고 말한다. 이렇게 이미 내러티브 속에서 시간과 논리가 붕괴되어 있는 상태에서 소설은 진행된다. 실제로 그뷔드뮌손의 형은 만성 조현병을 앓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그 직접적 경험의 흔적이 소설에 깊이 배어 있다. 그리 하여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조현병을 앓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이 된다. 소설 도입부에서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물론 내가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 또한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피장파장인 셈이 다. 그러나 현실은 내게 해야 할 그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던 반면에 나는 현실이 내게 당연한 듯 요구한 대가를 모두 치렀다.
(……) 하지만 정신병원에 끌려가고 시설에 갇혀 있어야 하는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각이 현실과 어긋날 때 할 수 있는 대답이 없다. 이 세상 에는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이 옳으며, 옳고 그름의 차이를 아는 것도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니까.”
조현병을 앓는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느낄, 익숙 해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오해당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들의 왜곡된 현실인식과 기괴한 사고들을 광기라 부르기는 쉬우나 이 때문에 느끼는 감정적 경험들을 증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터.
그 감정 자체는 다른 어느 누구만큼 진실한 것이다.
주인공은 ‘나의 현실’과 ‘너의 현실’을 대비하면서 왜 나는 미쳤고 너는 정상이냐고 묻는다.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며 거주했던 세계를 ‘미쳤다’는 말로 무화시키면서 한갓 망상이나 헛된 경험으로 일방적인 판단을 하는 것에 대해 항의한다. 저자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고 자신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만큼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가 자신만의 주관적 현실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우리가 발 디딜 곳을 다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겪었던 일이 우리들 누구만큼 생생했다는 것, 그 고통과 불안과 두려움은 ‘미치도록’ 강렬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실제로 조현병 환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에겐이 모든 게 ‘장난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마음에 구축된 세계가 너무 생생하고 논리적이기에 그들은 이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하지 못한다. 마치 나무에 박힌 쐐기처럼 운신할 틈 없이 그 세계에 꽉 틀어박혀 있어, 자신을 압도하며 짓누르는 세계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지독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또 우리 일상 대부분에 스며든 서로 모순되는 감정의 공존(이를 우리는 양가성이라 부른다)도 불가능해서 사랑 속에 미움이 있고, 여유 속에 지루함이 있고, 불안 속에 설렘이 있고, 우울 속에 날카롭고 야릇한 기쁨이 있는, 삶의 모든 곳에 스며든 복잡성이 사라진다. 그 딱딱하고 고통스런 세계 속에 거주하는 경험을 그뷔드뮌손은 섬세하고 나직한 목소 리로, 현재진행형으로 그려내고 있다.
김건종
정신과 의사.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마쳤다. 현재 한국정신 분석학회 심층반 고급 과정을 수련 중이며, 성안드레아병원 과장이다. 지독한 책 중독자로, 2008년과 2009년에 네이버 책 부문 파워블로거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