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를 읽으며 후쿠시마를 생각하다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는 ‘재난 이후’의 세계로 독자를 데려 간다. 핵전쟁으로 짐작되는 대재앙으로 인류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생명의 흔적이 거의 사라진 세계가 《로드》의 무대다.
“도시는 대부분 탔다. 생명의 흔적은 없었다.” 이렇듯 “황폐하고, 고요하고, 신조차 없는 땅”을 떠도는 아버지와 아들이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이다.
핵전쟁이나 혜성 충돌 같은 대재앙 이후 지구에 남은 마지막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SF소설들에서 심심찮게 만나 왔다. 매카 시의 소설은 살아남은 부자의 분투기를 간결하면서도 울림이큰 시적인 문체에 담았다. 시적이라고는 해도 생존을 위한 구체 적인 싸움이 매우 실감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독자는 자기 이야기처럼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대재앙 이후 희망을 찾아 나아가는 여정
“남자는 깜깜한 숲에서 잠을 깼다. 밤의 한기를 느끼자 손을 뻗어 옆에서 자는 아이를 더듬었다. 밤은 어둠 이상으로 어두웠고, 낮도 하루가 다르게 잿빛이 짙어졌다. 차가운 녹내장이 시작되어 세상을 침침하게 지워가는 것 같았다.”
《로드》의 첫 대목이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인 남자와 아이가 등장하고, 그들이 놓인 차고 어두운 세상이 묘사된다. 소설이 조금 더 진행되면 지금이 가을에서 겨울로 옮겨 가는 계절이 라는 것, 세상이 이렇게 바뀐지 몇 년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두사람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등의 기초 적인 사실이 추가로 제시 된다.
소설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폐허로 변한 세계에서 죽음의 위협에 맞서며 희망을 찾아 나아가는 부자의 여정에 바쳐진다. 아비와 아들을 위협하는 사신(死神)은 크게 두 가지. 굶주림과 추위로 인한 자연사, 그리고 먹이로서 그들을 노리는 또 다른 생존자들이다. 그렇다. 이 세계는 약육강식이라는 짐승의 논리가 글자 그대로 관철되는 문명 이전 또는 이후의 세계다.
사라진 옛 세계의 흔적처럼 어렵사리 얻어지는 소소한 식량, 먼지를 거를 마스크와 잘 때 몸을 덮을 담요, 불을 피울 라이터와 함께 부자가 끈질기게 지니고 다니는 물건 중에 권총이 있다. 달랑 총알 두 발이 들어 있는 이 권총을 남자는 매우 소중하게 간수한다. 식량이나 땔감을 구하고자 잠시 어린 아들 곁을 떠날 때면 남자는 그 권총을 아이 손에 쥐여 준다. 독자는 처음 에는 그 까닭을 알 수 없다가 소설이 절반 가까이 진행된 뒤에야 사정을 짐작하게 된다. 남자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겠 는가. “어떻게 하는지 알지. 그걸 입 안에 넣고 위를 겨냥해.” 아이가 다른 약탈자의 눈에 띄어 ‘고기’로서 도륙될 위기에 놓일 경우 미리 권총 자살을 택하라는 주문이었던 것.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주검보다는 덜한 숫자지만, 두 사람은길 위에서 종종 살아 있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폐허가 된 동네에 홀로 남은 어린 아이, 번개에 맞은 채 길을 걷다가 결국 주저 앉고 마는 남자, 두 사람의 식량과 담요 등이 담긴 수레를 훔쳐 달아나는 사람,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 대책 없이 길을 걷는 노인, 임신한 여자가 포함된 무리, 약탈자들의 식량으로 쓰이기 위해 감금되어 있는 이들, 그리고 남자를 향해 활을 쏘는 사내 등….
폐허 더미에서 ‘문명’을 운반하는 두 사람
대재앙이 닥치기 전 누군가가 소중하게 갈무리해 놓은 식량 창고를 발견하고 한동안 호사를 누리기도 하지만,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부자는 막연한 희망의 이름처럼 ‘남쪽’을 되뇌며 걸음을 옮기는 것인데, 그곳이라고 진정한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 다. 그들이 놓인 세계의 진실은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유언 없는 지구의 차갑고 무자비한 회전. 사정없는 어둠. 눈먼 개들처럼 달려가는 태양. 모든 것을 빨아들여 소멸시키는 시커먼 우주. 그리고 쫓겨다니며 몸을 숨긴 여우들처럼 어딘가에서 떨고 있는 두 짐승.”
이렇듯 냉혹하고 잔인한 세계를 떠도는 두 사람이 자신들을 ‘불을 운반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이 흥미롭다. 이들이 불을 피우기 위한 라이터와 약간의 연료를 지니고 다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불을 운반하는 사람’이라는 게 그것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말할 때 여기서 ‘불’이란 문명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할 법하다. 불의 ‘발명’에서부터 인류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그렇게 시작되었던 문명이전 지구적 대재앙으로 소멸의 위기를 맞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부자처럼 그 문명의 기억과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 한 문명은 완전히 끝장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비에게서 아들로 이어지는 ‘신의 숨’
최악의 조건에서 어린 아들을 보호하면서 양육하는 아비의 노력은 눈물겹다. 그런 아비와 아들이 때로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거니와, 길에서 마주친 가엾은 이들을 돕거나 데려 가자는 아들과 그런 행동이 위험을 수반한다며 반대하는 아비의 견해가 맞서는 때다. 그런 아들을 상대하다가 아주 지쳤을때 아비는 “네가 모든 일을 걱정해야 하는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굴지 마.”라고 내뱉는데, 그에 대해 아들이 한 말이 놀랍다:
“제가 그런 존재라고요.” 이렇게 말하는 어린 아들이야말로 신이 사라진 이 세계를 다시 찾은 신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극도의 굶주림 속에서도 부자는 ‘다른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다’ 는 원칙에 합의하고 그를 지키는데, 바로 그 원칙이야말로 이들이 운반하는 ‘불’(=문명)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말미에서 아비는 결국 화살에 맞은 상처가 덧나고 기력이 쇠해서 죽음을 맞는다. 남은 소년은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다른 일행이 거두게 되는데, 그 일행에 속한 여자가 소년에게 말한다. “신의 숨이 그(=아비)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 에서 사람에게로 건네진다”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로 드》를 읽는 느낌은 각별하다. 우리가 재난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 빠져드는 이유의 하나는 그로부터 모종의 ‘예방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 아니겠는가. 《로드》를 읽는 내내 ‘노 모어 후쿠시 마’라는 외침이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최재봉
1961년 경기 양평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영문과와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만나는 문학 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통신》 등의 책을 썼고,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같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