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辭典)에게 마음을 들키다니!
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펴냄)
실은, 두껍고 검고 근엄한 《표준국어대사전》은 그 무거운 겉표지만 넘기면 얄상스럽고 매끄럽고 얇은 종이들이 가득해그 안에서 얼마든 놀게 하곤 했다. 딱딱한 표지 너머를 채우고 있는 얇고 흰 종잇장들, 그리고 거기에 쓰인 그야말로 깨알 같은 글씨들은 속속들이 세상의 모든 뜻과 이치를 담은 또하나의 세계였다. 그 종잇장들이 어찌나 매끈거리면서도 얇은지 손가락을 세워 살살 넘기지 않으면 여러 장이 한꺼번에 넘어가버려 애를 태우게 하곤 했다. 그때 자주 하던 놀이는 이른바 사전 놀이였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어휘의 뜻을 새로 발견하는 재미도 의외이거니와,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단어들을 소리 내어 읽거나 그 뜻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는 일도 흥이 났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어떤 단어를 사전에 쓰인 말과 가장 비슷하게 설명하는 일을 내기 삼아 하는 것도 재미났다.
‘순수’와 ‘순진’을 구분해 주는 사전을 만나다
물론 사전(辭典)이 지루한 느낌부터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더욱이 요즘처럼 검고 두꺼운 표지와 희고 얇은 속종이의 이율배반적인 육체적 매력마저 빼앗긴 채 온갖 기기 속에 빼곡히 내장된 사전들은 그나마의 물질적 위엄과 존재감마저 잃어버렸다. 더욱이 당장 써먹으려는 기능적인 목적으로 사전을 뒤적이다 보면 지금 읽거나 쓰고 있는 글의 맥락에 맞춤한 듯 꼭 들어맞는 뜻과 어휘를 찾기 어려워 미적지근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안에는 정장을 입은 단어 들이 바르고 객관적인 ‘사전적 정의’들로만 오롯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순수’와 ‘순진’을 구별하고 싶은데, 국어사전은 ‘순수 (純粹): [명사]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순진(純眞): [명 사] 아무 꾸밈이 없고 순박함’이라고 적고 있다. 순수와 순진의 뜻이 그저 섞임 없고 꾸밈없다는 설명만으로는 미진해 이리저리 꿰어 쓰곤 했다. 얼마 전 읽은 소설 해이수의 〈루클라 공항〉에서 주인공들은 ‘순수’와 ‘순진’에 대해 이렇게 대화하고 있었다. “순수와 순진은 결과적으로 드러난 행동은 같지만 동기가 약간 다른 거야. 순진한 건 뭘 모르고 그냥 하는 거고, 순수한 건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거고.” 쉬운 듯 멋진 이 대비에 고개를 끄덕일 즈음, 김소연의 《마음사전》은 이렇게 덧붙인 다. “순진함은 때가 묻지 않은, 미숙하고 무지한 상태라 가끔은 독이 될 때도 있다. 순수함은 때를 털어낸 상태, 성숙함의한 속성, 현명함의 근거, 약이 될 때가 많다.”
김소연의 《마음사전》은 말이 말을 애무하는 사전이다. 《표 준국어대사전》의 권위와 객관성과 예의바름에 비해서 《마음 사전》은 따듯하고 부드럽고 예민하다. 하지만 예의바르지는 않다. 놀랄 만큼 정확한 것은 본래 예의바르게 느껴지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마음사전》의 정의들은 오히려 정확히 폐부를 찔러 읽는 동안 여러 번 몸을 움찔하게 하고 적잖이 당황 하게 한다.
모호하고 복잡한 ‘마음’을 풀어내기도
이 책을 읽다보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의 완벽성을 지레 포기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언어의 숙명이자 형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호하고 안타깝고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훼손 없이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설명하거나 표현하기 가장 난해한 ‘사랑’.
이를 국어사전은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적고 있다. 그것은 기성품 같은 언어의 나열일 뿐펄펄 뛰는 생것의 마음을 전하기에는 역부족이려니 싶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그남자는 사랑을 말하고 싶지만 사랑이라는 말의 상투성과 낡음 때문에 한참을 주저하다가 “난 너를 마시멜로해!”라고 차라리 새로운 언어로 고백해버린다. 《마음사전》은 사랑을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다만 가장 강력한 자장을 내뿜는 찰나. 처음 ‘사랑해’라는 말은 신음의 형식을, 과정의 ‘사랑해’는 감탄 혹은 즐김, 의지 혹은 속박과 테러의 형식을, 끝의 ‘사랑해’는 학살의 형식을 표면화한다.” 정확해서 예의 없는 이 설명이좀 모질긴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꼭 기억해 두려고 외운 몇개 항목들이 있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안개처럼 오리무중이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섬뜩한 기분 마저 든다. 이런 정의도 마음을 끈다. “솔직 함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고, 정직함은 남을 배려하는 것. ‘솔직’은 하는 사람은 편하고 대하는 사람은 불편하며, ‘정직’은 하는 사람은 조금 불편해도 대하는 사람은 편하 다. 솔직함은 탈제도적이고 정직함은 제도 안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솔직한 공무원’ 은 별 의미가 없지만 ‘정직한 공무원’은 의미 있게 쓰인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소중했던 당신이 중요한 당신으로 변해가고 있다.” 읽고 나서 가장 오래 가슴을 문지르게 한 항목은 ‘뒷모습’이다.
“뒷모습은 절대 가장할 수 없다. 정면은 아름답다는 감탄을 이끌어내지만,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한숨을 이끌어낸다.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바라보는 뒷모습이기에 눈꺼풀 안쪽에다 우리는 그 형상을 찍어서 넣어 둔다. 그래서 꺼내지지 않는다.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다.”
시인이 써내려간 애잔한 언어의 향연
《마음사전》의 저자 김소연은 시인이다. 흥미롭게도, 저자인 시인이 역시 시인인 남편에게 ‘외롭다’라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던 바로 그 순간 이 책은 잉태되었다. 외롭다는 마음을 전하기가 얼마나 복잡하고 곤혹스러운지 꼬박 하룻밤을 새워 그를 이해시킨 후 저자는 십수 년 동안 마음을 기록하고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아 이 책을 펴냈다. 언어에 유독 예민한 좋은 시인이 마치 시처럼 쓴 글인 만큼 글의 풍미와 여운이 대단히 짙고 깊다.
사전이란 언어가 자기모순을 감당하며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증명해야 하는 난공불락의 작업이다. 희노애락애오
이은정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대시와 여성문학과 세계고전명작과 글쓰기와 영화읽기 등 다양하고 산만한 관심을 갖고 있다. 《현 대시학의 두 구도》 《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 《한국여성시학》 《명작 속에 숨어있는 논술》 《공감 -詩로 읽는 삶의 풍경들》 《명작의 풍경》 등 저서 및 공저를 썼다. 현재 이화여대와 서울과기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