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화된 예술 감상은 이제 그만!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
(한명식 지음 | 청아출판사 펴냄)
누구든 예술을 접할 때마다 맞닥뜨리는 곤혹스러움은 ‘무엇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조선 정조때 문인 유한준이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부친 발문에서 따와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했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를 접하곤 예술 감상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다고 무릎을 쳤던 많은 사람들은 정작 그 ‘아는 만큼’ 앞에서 곤혹스러워한다.
더더욱 현대 예술은 심오하기 그지없어 ‘공부’하지 않고는 감상하기가 너무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이 어려운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일반교양서는 물론이거니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까지 골라서 감상하는 등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지만 정작 예술작품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그저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감상하기
오래 전에 만났던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를 읽고 예술작 품, 특히 미술 감상에 나름 입문했던 나로서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려면 당연히 공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예술품을 직접 창작하듯, 아니면 사거나 팔기 위한 감정을 하듯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치밀하고 정교하게 감상한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울 것이며, 또 모든 사람이 똑같은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정형화된 예술 감상이 매우 위험스런 발상이란 걸 깨닫는 데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술 작품은 그저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나는 특별히 예술 감상법에 대해 다룬 책들에 호감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이책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을 리뷰 대상으로 고르기까지 꽤고심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의 질적 수준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개인적인 호불호 차원이었다.
그런데 예술작품을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술에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 해박해져야 비로소 이 같은 감상이 가능 하다는 것이다. 서예에서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갖가지 서체를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공부는 필수라는 얘기. 예술 감상법에 대한 나의 방법적 진화는 결국 형용모순을 드러낸다.
각설하고, 내가 앞에서 말했던 진중권의 책을 읽으면서 진중권이 책에 서술하는 대로 실제 그림을 놓고 따라 짚으면서 요모조모 뜯어보며 감상하였었다. 그땐 정말 그림을 이렇게 감상해야 하는구나 하면서 감탄했었다. 그런데 그 책을 내 손에서 내려놓고 나 혼자 그림을 감상하면서보니 그게 아니었 다. 똑같은 그림을 접한 아내의 느낌도 나와 많이 달랐다. 결국 ‘진중권식의 방법’은 수많은 감상법 중 하나에 불과하였다는 점이다. 이후 난 미술품을 감상할 때 작가가 창작할 때 고려하는 갖가지 사항들을 내 나름대로 추측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형태’를 통해 동서양의 미술과 문화 읽기
이런 점에서 난 이 책도 여러 감상법 중의 하나라는 관점에서 읽어보려 한다. 대학에서 실내건축학을 가르치는 한명식 교수가 예술을 어떻게 감상하는 것이 좋을지 안내하는 책으로, 예술작품을 이루는 근본인 ‘형태’를 통해 동서양의 미술과 문화 읽기를 시도 한다.
그는 특정 작품에 한정되기 보다는 ‘형태’를 이루는 동서양의 비교문화, 예술사적 해석부터 진화론적 철학적 해석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형태’라는 가장 기본적인 조형 요소와 그 형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면 단순히 특정한 작품이나 사조가 품고 있는 내외적인 상황을 넘어 보다 체계적이고 본질적으로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야만 내가 앞에서 말했던 정형화된 예술 감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제목처럼 모두 9가지 요소를 살펴본다.
세계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인 ‘동’과 ‘서’를 비롯해 원근 법, 죽음, 진화, 모나드(복합물 속에 들어있는 부분 없는 단순한 실체), 기하학, 미술, 디자인, 조형 등이다. 이들 요소는 예술의 본질에 접근하는 통로인 동시에 인간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예술에 담겨있는 사물과 존재의 의미를 찾게 해주기도 한다. 예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각각의 작품은 왜 그런 형태를 띠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당대 사람들에게는 중요했는지 알아야 진정한 예술과 인간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의 본질에 접근하는 9가지 통로
그래서 이 같은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즉 철학, 역사학, 문학은 물론이거니와 진화론, 기학학과 같은 과학과 미술과 건축 같은 예술학의 장르들이 동원된다. 실내디 자인을 연구하는 학자임에도 건축과 디자인이 아닌 철학과 문학, 과학이 있다는 믿음 아래 그것을 건축과 예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은이는 건축은 물론 회화 작업을 할 때도 수학 적인 논리로 세상을 보려고 한단다. 디자인이란 창작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정상적이며, 자연적인 산물 즉 인위성이 배제된 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 예술은 예술가가 표현한 것을 감상하는 자에게 전달하는 일방적인 관상품이 아니다. 역사, 철학, 과학과 같은 학문은 물론 예술 역시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윤택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 본능의 일부분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파편화된 예술론을 넘어 예술 이해의 근본 틀을 알려준다.
비교하며 읽기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풀어 쓴 미학의 역사. 일반 독자들과 거리가 멀었던 미학을 대중과 친숙한 학문으로 인식시킨, 미학 입문서 분야의 스테디셀러다.1, 2권이 발행된 지 10년 만에 나온 3권에서는 현대 예술과 철학을 다룬다. 1권에서는 에셔가, 2권에서는 마그리트가 등장하였다면, 3권에서는 이제껏 국내에 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건축가 겸 판화가 피라네시가 등장한다. 피라네시는 빅토르 위고, 움베르트 에코, 올더스 헉슬리, 보르 헤스 등에 영향을 준 예술가라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조성일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신문사에서 일하다가 뜻한 바 있어 그만두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평 전문 웹진 <부꾸>를 창간하여 직접 운영했 다. 이어 잡지 출판을 하면서 계속 출판계 언저리에서 머물다가 신문이나 잡지에 서평을 기고하고 방송에 나가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등 출판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