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도르 안에는 대체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바느질 수다>
  • 문학평론가 이은정의 인문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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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도르 안에는 대체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바느질 수다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 정재곤, 정유진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차도르는 이슬람 여성들이 얼굴과 몸을 가리기 위해 입는 복장이다. 온몸을 친친 두르는 이 검은 천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결박하는 시대착오적인 상징물이자 벗어던져야 할 억압적인 의상으로 인식된다. 차도르의 칙칙하고 폐쇄적인 모양과 빛깔은 이 역동적인 세계 속에서 때로 의아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지만, 검은 천에 올올이 스며 있는 완고하고 경직된 이념은 그들로 하여금 차도르를 훌훌 벗어던질 수 없게 하는 완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검은 차도르 안에 입고 있는 붉디붉은 욕망! 
     
    ‘차도르 벗어던지기’를 갈망하는 이슬람 여성들의 시도는 진작부터 있어 왔다. 남자들이 ‘벗고’ 뛰는 축구경기를 차도르 입은 여성이 볼 수 없다는 데 저항하며 ‘풋볼 레볼루션’을 일으켰고, 청소년올림픽에 출전한 소녀선수들이 어쩔 수 없이 차도르와 유사한 부르카를 입고 나서자 FIFA는 그런 위험한 복장으로는 경기를 할 수 없다고 경고를 했으며, 테헤란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던 한 여성교수는 감히(!) 차도르를 입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이 반란과 저항 이후 마침내 여자들도 비로소 축구경기 따위(!) 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어린 소녀들은 새로운 패션을 입고 축구 장을 내달릴 수 있게 되었으며, 끝내 차도르 입기를 거부했던 그 여성교수는 이란에서 금지하는 소설들만 골라 읽고 《테헤란 에서 롤리타를 읽다》라는 도전적인 책을 펴냈다. 최근 중동의 민주화시위에서 차도르를 입은 여성들은 차도르를 벗어던질 그날을 지지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느질 수다》라는 이 책도 “차도르를 벗어던진이란 여성들의 아찔한 음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검은 휘장 같은 차도르 안에 그녀들은 대체 어떤 생각, 어떤 사랑, 어떤 욕망, 어떤 언어의 옷을 입고 있을까. 차도르 너머로 밖을 내다보는 그녀들의 눈빛과 차도르 밖으로 흘러나오는 그녀들의 언어는 대단히 담대하고 열정적이고 뜨거웠다. 즉 그녀들이 검은 차도르 안에 입고 있는 것은 붉디붉은 욕망! 
     
    아홉 여자들이 벌이는 걸쭉하고 질펀한 입담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남자들이 낮잠을 자러 간 사이,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마친 여자들이 따듯한 찻잔을 들고 모여 앉는다.

    가장 평화롭고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이 시간, 가족이면서 동시에 절친한 친구인 아홉 명의 여자들은 그렇게 제일 좋아 하는 일, 즉 ‘토론’을 시작한다. 그녀들은 이 수다의 향연이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일”이라고 은근히 합리화하면서 마음에 켜켜이 쌓여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도록 서로를 부추긴다. 기품 있고 아름다운 이 아홉 여자들이 벌이는 입담이 얼마나 걸쭉하고 질펀한지 읽다보면 때로는 뺨이 붉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박장대소를 하기도 한다.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 진정 사랑했던 연인과 하룻밤을 보낸 후 순결을 잃었다며 고민에 빠진 친구에게 작은 면도날을 건네주며 첫날밤의 처녀 행세를 도모한 그녀들, 아이를넷 낳도록 남편의 그곳을 제대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여자 에게 성령으로 잉태했느냐며 농담을 던지는 그녀들, 열세 살의 앳된 나이에 예순아홉의 장군에게 강제로 시집을 가게 되지만 담을 넘어 탈출을 감행했던 여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그녀들, 열혈 공산주의자와 사랑에 빠져 낯선 땅까지 따라가지만 결국 배신당하고 진실한 사랑을 찾은 여자를 격려하는 그녀들,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 남자의 때 묻은 셔츠와 온갖 병치레와 찌질한 본색은 마누라의 몫이라는 것을 알아 동정과 비판을 서슴지 않는 그녀들, 이혼녀가 총각과 결혼하기 위해 점쟁이를 찾아가서 배운 비법을 듣고 환호작약하는 그녀들, 엉덩이의 지방을 빼서 가슴확대수술을 한 후 남편이 가슴을 애무할 때마다 자기 엉덩이에 입 맞추는 모습을 상상하는 여자에게 브라보를 외치는 그녀들, 갑부와 결혼해 어마어마한 보석을 받지만 그가 싹쓸이해 도망가버려 결국 순결만 잃었다고 우는 여자에게 보석이 아까워서 우는 건 이해하지만 순결 따위로 울지는 말라고 위로하는 그녀들. 
     
    줄줄이 밑줄 그어두어야 할 인상적인 대사들 
     
    아홉 여자들이 풀어놓는 이 생생한 이야기와 논쟁은 이슬람 문화가 여성에게 자행해온 끔찍한 억압과 폭력을 통쾌하게 전복한다. 명예살인, 할례, 조혼, 순결과 처녀성, 정조와 부덕, 가부장적 완력, 이념의 허위들이 모두 그녀들의 수다 속에서 악취를 뿜어내며 야유 받고 조롱당한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차도르를 쓰지 않는 서구를 무조건 선망하는 것은 아니다. 유머 넘치는 그녀들은 “걔네들은 섹스 문제가 해결되니까 다른 일을 할수 있는 거야”라든지 “MTV에 나와 벗고 춤추는 가수들처럼 살고 싶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문화가 서구 세력에 저항해야 할 지점이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는 점에 결기와 자존감을 드러낸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만화책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교양만화, 시사풍자만화, 심지어 예술만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 만, 일단 순수한 만화다. 그것도 아주 간결하고 심플한 선과 색으로 그려진 흑백 만화다. 그런데 예사롭지 않은 그 붓끝이 얼마나 강렬하고 명징한지 마치 판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욱이 만화속 그림에는 별 디테일이 없을 뿐 아니라 주제 또한 세계 공통적 이어서, 그 배경이 이란이든 한국이든 등장인물이 그녀들이든 우리들이든, 그저 자유롭게 활보하듯 빠져 읽으면 된다.

    만화책이지만 말풍선 속의 인상적인 대사들에 줄줄이 밑줄을 그을 곳이 많다. “용기는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거지.” “내가 나 자신을 책임지니까 나를 인정해주는 거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변수는 생기는 거란다.” 두 줄을 그은 부분도 있다. “사는 게 그런 거다! 어떤 날은 네가 말 등에 타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말이 네 등에 타고 있기도 한 거야.”

    이렇게 농담과 진담을 번갈아 말하는 만화 속 그녀들의 도도하고 까칠하고 우아한 표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마치 그녀들과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다. 바느질과 수다는 여성들의 전유물이자 향유물이다. 아무래도 언어와 욕망의 조각보를 잇고 꿰매는 능력이 남자들보다 낫다. 여자들이 쭉 둘러앉아 바느질로 한 땀씩 꿰매 만들어내는 푸근한 이불 한 채, 조각조각 모두숨 쉬듯 살아 있는 퀼트, 화려하고 아름다운 양탄자, 이들은 모두 여성의 언어와 욕망을 가득 품은 바느질 끝에 나온 것들이 다. 책은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사랑은 바느질 같은 것, 그 끝이 뾰족해서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사랑의 상처를 꿰매고 기억의 조각을 잇게 하는 것도 모두 그 바느질 덕이라고. 그러고 보면 여성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에 바느질과 퀼트와 베짜기와 수예와 뜨개질이 자주 등장하는 까닭을 다시 이해할 것 같다. 차도르를 썼건 쓰지 않았건 벗어던졌건 이 여성들의 발칙하고 자유롭고 당당한 수다를 세계 곳곳의 여성들이 읽고 있다고 생각 하니, 마치 굵은 밧줄로 여성들의 연대의식을 든든하게 뜨개질 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은정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대시와 여성문학과 세계고전명작과 글쓰기와 영화읽기 등 다양하고 산만한 관심을 갖고 있다. 《현 대시학의 두 구도》 《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 《한국여성시학》 《명작 속에 숨어있는 논술》 《공감 -詩로 읽는 삶의 풍경들》 《명작의 풍경》 등 저서 및 공저를 썼다. 현재 이화여대와 서울과기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 글쓴날 : [16-11-01 14:44]
    • 김정민 기자[dcon@myde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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