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과학이
새로운 방식의 예술인가?
대칭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 안기연 옮김 | 승산 펴냄)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 힘든 과학 지식을 청중의 눈높이에 맞춰 오락처럼 이야기하기. 이 책의 저자 사토이는 영국에서 현재 이런 일을 맡아하는 대표 주자다. 쏟아지는 지식 홍수 - 문제점도 많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무료로 정보를 공유하고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21세기와 함께 문을 연 ‘위 키피디아(www.wikipedia.com)’는 지식정보화 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테드(ted)’, 청중을 매혹시킨 그의 특강
‘좋은 지식을 확산시키자’는 취지의 ‘테드(www.ted.com)’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테크놀로지,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의 첫 글자를 딴 테드(ted)는 원래 이 분야 사람들이일 년에 한 번씩 만나 생각을 나눠보는 회의로 시작되었으 나, 어느덧 경계에 구애되지 않는 다양한 주제로 폭을 넓혔 다. 책으로나 겨우 만나볼 수 있는 석학들이 지구 시민을 상대로 18분짜리 특강을 펼친다. 여기서도 역시 인기 강사인 사토이 교수는, 특강에서 스물한 살에 총싸움을 벌이다 목숨을 잃은 열혈 청년, 아니 수학 천재 갈루아의 이야 기로 ‘대칭’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죽기 전 그가 남긴 문서에 유서처럼 기록된 자연의 언어 -대칭, 이는 분자의 구조로 시작해 미생물의 세계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백설의 결정처럼 우리 인간의 탐미적인 기준도 된다. 그 결과 왕궁이나 사원 혹은 거기 세워진 탑이며 피라 미드까지 위엄을 뽐내는 건축물도 대개 대칭 구조를 이룬다. 아니 대칭뿐 아니라 대칭의 조심스런 어긋남조차 예술과 건축, 음악의 완결을 유도하는 매혹인 비법이 된다.
불혹을 지나는 독특한 방법
이렇듯 자연의 언어라고도 할 수 있는 대칭을 풀어가며 사토이는 자신의 마흔 살을 기념하는 여행을 떠난다. 지력 이며 체력이며 불혹의 나이를 정점으로 우리들 또한 대칭의 길을 가는 것일까? 40의 다양한 의미를 곱씹으며 수학에 입문하고 성장한 사연을 통해 독자들에게는 좀 낯선 수학의 세계를 소개한다. 오랜 세월 응용된 수의 비밀을 풀어 보이느라 그는 여러 문명의 골목으로도 우리를 안내한다.
일 년짜리 사토이 교수의 기행문은, 대자연의 무늬에 숨겨진 온갖 대칭을 추적하고 그 특성을 파악하려 고군분투한 여러 괴짜 수학자들의 활동, 수학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그들의 기묘한 운명과 곡절들이 역사의 맥락과 함께 대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세상의 다양한 대칭을 수학적으로 정의하고 그 종류를 분류하고 특성을 파악하는 군(group) 이론이 우리의 사토이 교수가 몸담고 일하는 분야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아인슈타 인은 먼저 가속도와 중력이 동전의 양면임을 보였고, 이 개념을 확장하여 중력이 시공간의 기하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아말리에 뇌터는 대칭성과 보존법칙을 하나로 융합하는 정리를 찾아냈으며, 글래쇼와 와인버그와 살람은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이 동일한 힘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나아가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을 넘어 기본 입자의 표준 모델에 이르기까지 대자연의 대칭을 이해함 으로써 얻게 되는 소득은 무궁무진하다.
회문의 대칭성 파악이 열쇠
예컨대 군 이론에서 대칭을 다루며 획득하는 수식은 ‘다시 합창합시다’, ‘여보 안경 안 보여’, ‘다시 올 이월이 윤이월이 올시다’ 등 왼쪽부터 읽으나 오른쪽부터 읽으나 똑같은 결과가 되는 회문과 닮은꼴이다. 그런데 이들을 생성하는 수학적 패턴을 찾는 작업에 대해, 어떤 방정식을 구해 글자의 조합을 찾아내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라 한다. 그 이후의 결과에 대해 훨씬 더 벅찬 기대를 할 수 있음이 사토이 교수에게는 중요하단다.
“아직 잘 모르지만 나의 과제 중심 어딘가에 의미심장한 구조가 숨어 있다는 점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회문의 대칭성을 파악한다면 바로 이 방정식을 통해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그 비밀의 화원에 다녀온 셈이 된다. 어떻게든 그 요령을
터득하면 아직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는 놀라운 세계로 한발 두 발 우리가 걸음을 옮길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렇듯 과학의 세계에서는 온갖 단서를 한 줄에 꿰어주는 만능의 바늘 같은 게 있으리라는 생각이 지배한다. 종은 멸종될 수 있고 달은 위성과 부딪혀 폭발할 수 있으나 수학적 개체는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는 수학자들의 자부심, 수학은 온갖 지식의 진정한 근원으로서, 인간 삶의 한계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며, 수학적 아름다움이란 그 모든 것을 간명하게 요약해낸 결과물을 이름이란다.
아름다움의 주인은 누구?
부모 마음은 다 마찬가지? 이 따위 지적 모험에 아랑곳하지 않고 닌텐도 게임을 두들겨대는 아들 녀석과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간 사토이 교수는, 생명의 묘사를 금한 이슬람문명 에서 무어인들이 이룩한 절정의 예술이 품은 기하학적 문양 들을 소재로 대칭의 비밀을 풀어간다. 숨이 멎을 듯 예술의 극치를 보이는 알함브라의 무궁무진한 문양 앞에서 그는 수학적 결론으로 열일곱 가지 대칭의 양식부터 요약한다. 180 도에 해당하는 거울 대칭뿐 아니라 90도, 60도, 30도 회전 대칭의 원리와 그 발현 등을 예로 들다가 문득 방정식의 세계를 탐구한 아랍의 수학자들과 그 원리를 알함브라 문양 예술로 승화시킨 무어문명, 그리고 무상한 세월을 읊조리며 다음 여행을 계속한다.
오늘날 ‘아름다움’이니 ‘우아함’이니 하는 얘기는 예술가보다 과학자들이 주로 맡아서 한다. 1933년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폴 디랙은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요약했다.
“물리법칙은 반드시 수학적 아름다움을 갖춰야 한다.”
이렇듯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이제 거의 들을 수 없게 된 ‘아름다움’이란 단어에 과학자들은 굉장히 집착을 한다. 이제는 과학이 새로운 방식의 예술인가?
김재희
서강대에서 생물학과 독문학을, 독일 보쿰에서 인지과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 여성/환경운동에 동참하고, 서울예대에서 ‘예술과 과학’ ‘생명의 이해’를 가르 친다. 《신과학 산책》 《깨어나는 여신》 《지구 시인 레이첼 카슨》 등의 책을 썼고, 《파도》 《유전자 언어》 《생명의 느낌》 《아주 작은 차이》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