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물들을 보며 예술을 생각한다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민병일 글·사진 | 아우라 펴냄)
내가 이 책을 리뷰하기로 맘먹은 것은 순전히 책 제목에 들어 있는 ‘만년필’ 때문이었다. 만년필. 이 낱말만 읊조려도 뭔가 떠오를 것 같지 않은가. 주황색 스탠드 불빛 아래 놓인 책위에 안경과 함께 만년필이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사진 같은 것. 이 사진이 고전적인 것이면 어떤가.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던 ‘아날로그’적인 감성들을 깨우기에는 이것 만으로도 충분한데.
온갖 사물들 속에 깃든 삶의 진정성과 예술미
나는 평소 글을 쓸 때 노트북을 사용한다. 이 원고도 역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려 글자를 만들고 이 글자들을 모아 문장을 만든다. 하지만 나는 온갖 것들이 죄다 디지털화되는 지금 ‘아날로그’적 문화를 대변하는 아이콘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필기구인 ‘만년필’이란 생각이어서 내가 늘 지니고 다니는 수첩 속에 만년필을 꽂아두고 필요한 메모를 비롯하여 손으로 글씨를 써야 할 경우엔 이 만년필을 꺼내서 사용한 다. 나름 그런 생각의 소유자이기에 ‘만년필’이란 낱말에 소위 ‘필’이 꽂히지 않으면 외려 그게 이상하다. 하나 뱀다리를 달면 내가 쓰는 만년필은 몽블랑은 아니다. 내가 필기구에서 부리고 싶은 호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몽블랑 만년필을 갖는 것임을 살짝 고백한다.
장황한 글머리를 이쯤에서 각설하고, 그래서 난 민병일이 사진 찍고 글을 쓴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을 지극한 아날 로그적 감성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펼쳐들었다.
역시 ‘오래된 사물들을 보며 예술을 생각한다’는 책의 부제보다 더 딱히 어울리는 이 책의 한 줄 리뷰는 없을 듯싶었다.
필자가 독일 유학 시절 주말마다 벼룩시장에서 만났다는 온갖 사물들 속에 삶의 진정성과 예술미가 깃들어 있다는 말이 공허한 수사가 아니라는 것은 이 책의 첫 꼭지 ‘유겐트슈틸 램프’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램프의 불빛이 몸속에 스며들어 음악을 연주
함부르크대학 앞의 유럽 문화사 갤러리 같은 골동품점에서 발견한 램프에서 나오는 주황색 불빛을 보고 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에 나오는 창가를 떠올리며 하이네의 시 ‘찬란한 오월에’를 읊조린다. 그리곤 이 램프의 불빛이 자신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브람스의 <2중 협주곡>처럼 고음의 바이 올린 음색과 중력 머금은 첼로의 낮은 음색이 한 몸으로 포개 진다. 이쯤 되면 그는 이 램프에 푹 빠진 셈일 터, 해서 이 예쁜 아가씨(램프)를 영원히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싶어 살 의사를 비치자 가게주인은 이 램프는 유겐트슈틸이라서 좀 비싸다고 말한다. 유겐트슈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20여 년을 풍미한 아르누보의 독일적 변용인데, ‘젊은 스타일’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런 식이다. 모든 장르의 예술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풀어 놓는, 지극히 절제된 표현으로 조근조근 말하는 감칠맛 나는 글맛에 취해 다음 꼭지로 넘어가본다. 역시 깊게 우러나는 장맛처럼 싸구려가 아닌 고상한 완상미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만년필은 잃어버린 낭만을 찾을 수 있는 길
내친김에 표제작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도 읽어보자.
인간의 그리움이 향하는 공간이라며 옛날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엄마의 뱃속 같음을 느낀 그는 어느 날 벼룩시장의 잡동사니 틈에서 몽블랑 만년필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이 만년필에서 어머니가 원산에서 시집올 때 가져왔던 소중한 물건을 떠올린다. 어머니의 젊은 날 흑백사진, 박달나무로 만든 다듬잇돌, 일본산 쿠타니 찻주전자, 그리고 칠보 쌍가락지. 특히 몽블랑 만년필의 표면에 가는 선의 홈을 파서 감입한 은입사의 질감에서 어머니의 칠보 은가락지의 질감을 느낀다. 그러 면서 그는 만년필은 낭만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CD처럼 디지털적이지 못하고 LP처럼 아날로그적인 사물. 잉크를 넣는 동안 기다림의 여유가 필요하고, 잉크를 다 넣고는 두어 방울 떨어뜨리는 지혜가 필요하고, 글을 쓸 때에도 펜촉을 왼편으로 살짝 눕혀 쓰는 - 이 점은 나와 다르다. 나는 곧추세워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여 쓰는 편이다 - 비평정신과 사려 깊음을 요구하는 인문주의적 사물. 그래서 만년필은 잃어버린 낭만을 찾을 수 있는 한 가지 길이라고 그는 말한다.
참고로 지은 이는 앞에서 내가 말한 낡은 구도가 아닌, 대신 주황빛이 감도는 신문 위에 뚜껑을 덮은 채 올려놓고 찍은 그 몽블랑 만년필 사진을 실었다. 나는 이 사진에서 옛날 중학교 학생들이 교복 명찰 아래 주머니에 꽂고 다녔던 것처럼 근사한 장식물 이상의 의미,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가 살고 있는 집처럼 여겨졌 다. 뚜껑만 열면 잉크를 타고 저편의 기억들이 쉼 없이 흘러나올 듯이, 그래서 신문들을 빽빽이 장식하는 마술 말이다.
사물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특별한 존재
이 책에는 앞에서 소개한 램프나 만년필을 비롯하여 고서, 그림, LP음반, 습도계, 편지 개봉칼, 무쇠 촛대, 타자기, 펜촉, 진공관 라디오 등 벼룩시장이나 앤티크시장을 찾아다니면서 사들인 오래된 사물들이 등장한다.
지은이는 이런 오래된 사물들을 비루한 현실을 넘어서는 ‘초 현실적인 예술의 오브제’라거나 텍스트 밖에 있는 ‘삶 속의 예술 작품’으로 규정한다. 사물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특별한 존재라는 것. 물론 그는 처음에는 이들의 특별한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과 오랫동안 동거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고, 그러다보니 그들이 내는 무언의 언어는 예술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사물들은 과거의 화려했던 꿈을 간직한 채 망각되어지지 않는 꿈을 꾸고 있다며 그는 ‘인간화된 사물’의 꿈을 통해 유토피아의 창을 보려 했다고 한다.
그렇구나. 내 주변에 있는 사물들도 이 책의 지은이의 사물 처럼 자신만의 언어로 내게 뭔가를 말했을 텐데, 난 그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구나. 무심하긴. 이제 막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한 기억의 촉수들이 활동을 시작한다. 이 책처럼 한번 따라 해보자고.
조성일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신문사에서 일하다가 뜻한 바 있어 그만두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평 전문 웹진 <부꾸>를 창간하여 직접 운영했 다. 이어 잡지 출판을 하면서 계속 출판계 언저리에서 머물다가 신문이나 잡지에 서평을 기고하고 방송에 나가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등 출판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