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소통한 그들이
현생인류보다 더 정서적이었다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스티븐 미슨 지음 | 김명주 옮김 | 뿌리와이파리 펴냄)
우리보다 먼저 지구상에 살았던 종족도 음악을 향유했다! 2만 5천 년 전까지 인류의 직계 조상과 이웃해 살았으나 멸종해버린 그 종족은 좀 미련하고 덜떨어진 원시인 정도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진화의 개념을 신체뿐 아니라 정신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진화심리학 그리고 진화인류학 분야의 연구자인 스티븐 미슨은 네안데르탈인이 우리 현생인류보다 더 정서적인 종족이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몰랐던 네안데르탈인의 면모
이들이 현생인류와 얼마나 닮았고 또 다른지, 멸종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 유전자로 비교하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공통 조상이 30~50만 년 전에 살았고, 그 이후 두 종이 아프리카에서 각각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25만 년 전쯤 출현해 마지막 빙하기를 겪어낸 네안 데르탈인의 멸종에는, 4만 년 전 유럽으로 퍼져나간 호모 사피엔스의 역할도 한 몫 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이들은 우리보다 덩치도 좋고 두개골 생김이나 뇌의 용량도 더 발달 했으며, 유적을 보면 제법 복잡한 석기들도 남아 있다. 하지만 인두와 후두 사이가 너무나 가깝고 혀와 입술을 재빠르고 능란하게 놀릴 수가 없었으니, 우리처럼 분절된 낱말을 이어 가는 언어를 만들지는 못했으리라.
대신 우리보다 높이 달린 목젖에서 소프라노로 큰 소리를 내며 마음을 전하고, 행복해 했고, 슬퍼도 했고, 화도 냈고,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비록 가사는 없지만 더 많이 노래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언어가 멈추는 곳, 거기서 음악은 시작되고
분절된 낱말이 없는 언어? 그건 마치 엄마만 알아듣는말 배우는 아이의 ‘의미심장한’ 표현 같은 울림이어서, 저자는 이를 언어의 전 단계인 ‘hmmmmm(holistic 통짜, multi-modal 손짓 발짓을 함께 하는, musical 음악 같고, mimetic 흉내 내는, manipulative 요구)’이라고 이름
붙였다. 네안데르탈인의 소리는 분절어로 변천하지 않았기에 내내 hmmmmm을 쓰던 시절의 절대음감을 유지했을 가능 성이 높고, 따라서 그들의 음악 능력은 호모 사피엔스와 공동의 조상 혹은 우리들 현생인류에 비해서도 훨씬 뛰어났으리 라는 진단이다.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호프만은 “언어가 멈추는 곳, 거기서 음악이 시작된다.”는 말을 했다. 언어와 음악, 이 둘은 어떤 관계일까? 언어학자 스티븐 핑커는 《언어 본능》에서 언어의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 정도로 음악을 폄하했다. 생존과 번식의 의무에 지친 인류를 위로하느라 노래와 춤까지 덤으로 생겼다는 견해다. 그에 비해 이 책의 저자 미슨은 음악과 언어는 둘 다 hmmmmm의 뿌리에서 비롯했다고 추정 한다. 인류의 조상도 hmmmmm으로 통하다가 정보 전달이 주 기능인 말과 거기서 해방된 노래로 나뉘면서, 언어이면서 동시에 음악이었던 hmmmm은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인지 유동성 vs. 소통과 감응의 능력
그와는 달리 정보 전달력이 탁월한 분절 발음의 언어를 활용하자 무한한 어구가 생성되고, 인간의 뇌는 새로운 방식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호모 사피엔스는 여러 지식들을 결합해 활용할 길을 찾은 것이다. 이 놀라운 특성을 칭하는 이름으로 저자는 ‘인지 유동성 (cognitive fluidity)’이 라는 용어를 제창한다. 인지 유동성은 개별 지식과 사고방식을 자유로이 혼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로 인해서 비유의 사용도 가능해지고 창조적인 상상력이 생겨나니, 그 기반으로 과학과 종교와 예술도 꽃을 피우게 되었을 거다.
하지만 인지 유동성의 탁월함에 도취했던 우리는 50만 년의 세월 동안 네안데르탈인들이 이룩한 hmmmmm의 진화를 주목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훨씬 더 복잡한 감정 들이 실린 몸짓과 춤, 의성어를 활용하는 소리며 이들을 포착하는 감각까지. 호모 사피엔스보다 큰 뇌를 갖게 된 네안데르 탈인은 멸종의 길을 갔으나 험한 세상에 서로 다리가 되어주 면서 공동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네안데르탈인은 몸을 혹사하는 생활을 하면서 자주 다쳤던 듯하다. 이들의 해부학이 잘 알려져 있는데, 네안데르탈인 화석의 수가 많으며 보존 상태도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다 망자를 매장했던 풍습 덕분이다.”
‘자극의 빈곤’이 때론 더 창의적인 힘으로
hmmmmm을 구사하면서 네안데르탈인들은 복잡한 석기도 함께 만들고, 큰 짐승을 사냥한 흔적도 곳곳에 남겼다.
특히 장례를 치렀던 자리들은 유럽에서만 수백 군데가 확인 되었다. 저자는 여러 상황을 재구성하며 ‘이성 체계’를 개발한 호모 사피엔스보다 네안데르탈인이 더 진화된 ‘감정 체계’를 성취한 연유들을 조목조목 열거한다.
감정은 인지력이나 생리 기능과도 깊이 얽혀 있는 몸과 마음의 제어 시스템이라, ‘이성적인 생각’뿐 아니라 행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들에겐 음악이 곧 언어였으니, 호모 사피엔스의 말과 비교하면 자아 정체성보다는 사회 정체성의 형성에 더욱 유리했을 것이다. 1만 년 남짓 빙하기까지 맞아야 했던 혹독한 기후의 북유럽에서 이들은 삶의 고비마다 병든 이들과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을 진정시키고 노래를 불러 주며 20만 년 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인지 유동성’과 관련해 ‘자극의 빈곤’이 오히려 창의 적인 힘이 된다는 구절이 눈이 뜨인다. 과도한 교육열에 희생 되는 우리 아이들, 아니 고진감래를 꿈꾸면서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학부모들에게도 이는 진정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과다한 자극에 노출되는 과유불급 현실이 우리 아이들의 ‘인지 유동성’을 정지시키고 창의력까지 말살할 수 있다는 거다.
‘그냥 냅두기’, 이 간단한 비결로 교육 문제의 절반가량은 사라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재희
서강대에서 생물학과 독문학을, 독일 보쿰에서 인지과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 여성/환경운동에 동참하고, 서울예대에서 ‘예술과 과학’ ‘생명의 이해’를 가르 친다. 《신과학 산책》 《깨어나는 여신》 《지구 시인 레이첼 카슨》 등의 책을 썼고, 《파도》 《유전자 언어》 《생명의 느낌》 《아주 작은 차이》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