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배제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남성?
두뇌는 평등하다
(론다 쉬빈저 지음 | 조성숙 옮김 | 서해문집 펴냄)
“두뇌는 평등하다.” 이게 무슨 얘긴지, 제목만으로는 아리송하 다. ‘과학은 왜 여성을 배척했는가?’ 라는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오히려 잘 드러낸다. 하지만 이 책의 원제는 ‘The Mind has no Sex?’, 즉 ‘인간 정신에 성별이 없다?’이다. 18~19세기 유럽의 근대과학혁명 와중에서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은 생김이 다르고 기능이 다르니, 육체의 소산인 정신도 각 본분에 맞는 분야가 있다는 결론이었다.
과학으로 증명한 여성 배척의 지식 체계
그에 비해 과학과 기술 그리고 의학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여성의 역할 변화를 입체적으로 탐구해온 이 책의 저자는, 여성을 배제한 건 과학이 아니라 그 시대 과학하는 남성들이었다는 점을 조목조목 밝힌다. 1762년 출간된 《에밀》에서 루소는, 여성은 남성을 보완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바로 이 무렵 유럽 사회는 살롱의 중심이던 지식인 여성들에게 ‘이상적 어머 니’ 즉 현모양처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근대 해부학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여성의 뇌가 활발히 기능 하면 난소가 제 역할을 못하니’ 여성은 아무래도 과학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의학 집단은 모유 예찬론과 함께 출산과 양육이 여성의 본성이자 역할임을 ‘과학의 이름으로’ 증명해댔다.
그 《에밀》의 독서삼매경에 빠져 평생 딱 한 번 산책 시간을 어겼다는 칸트 선생께서도 “여성은 머릿속에 그리스어가 가득하 거나 복잡한 수식을 토론하는 데 열중하더라도, 수염을 기르지 않고는 심오한 지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힘들다” 고 투덜댈 만큼 당시 유럽의 남성 지식인들은 여성의 교육이 자연 법칙에 어긋난다고 믿었다. ‘지식을 통한 인간 해방’을 신봉 하며 “모든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지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때도, ‘인간’에 대한 칸트의 이해는 공자님과 꼭 닮은 성차별적 한계에 묶여 있었다.
불평등 구조를 심어나간 ‘가치중립적 과학’
저자는 근대과학이 배척한 것은 여성뿐만이 아니라 ‘여성적’ 이라고 여기는 것 모두였다고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과학 이며 지식은 뮤즈 여신들이 맡았던 영역으로 칭송받았고, 그 이름조차 여성으로 의인화되었다. 그에 비해 고대 및 중세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한 근대과학이 이른바 새로운 과학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예컨대 근대과학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이컨은 구세대적 가치는 대략 ‘여성적’이라고 몰아붙였다. ‘여성적’이라는 말은 전통적으로 숭앙 받던 특성들을 싸잡아 경멸하는 형용 사가 되어, 이를테면 과학을 주재해온 여신들의 세계로 표현한 과학 서적의 속표지 장식까지 배척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이런 토대 위에 성립된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 과학은 온갖 혼란을 잠재우고 정치적 편향 따위를 초월하는 ‘중립적인’ 심판 자로 자리 잡았다. 과학에 동원되는 공평무사한 판단력과 이성은 진실만을 대리할 뿐이니, 특정한 가치 따위에 휘둘림 없는 순수한 지적 능력이었다. ‘가치중립적 과학’이라는 주장은 과학의 자기 강화 구조를 공고히 하며 지식 체계에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심어나갔다. 이런 배경적 특성에 따라 여성은 과학에서 배척당했고, 심지어 천부적으로도 무능함이 입증되니 배척을 당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과학사에서 누락 당한 여성 과학자들과의 조우
근대과학의 성립으로 더욱 강화되고 고착화된 ‘열등한 정신의 소유자, 여성’이라는 편견에 대해 더 이상 반론을 펼칠 필요 조차 없게 된 오늘날 현실에서, ‘과학이 여성을 배척하게 된 배경과 다양한 음모의 현장을 흥미진진하게 정리한 쉬빈저의 《두 뇌는 평등하다》는 20년 전 출간 당시의 신선함이나 긴박감은 한결 떨어진다. 하지만 이 책의 또 다른 미덕 하나는 과학사에서 누락 당한 바로 그녀들과의 조우이니, 제도권 밖에서 무시와 조롱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제 길을 찾고, 때로 남성의 이름을 빌려 힘겨운 활동을 이어간 행적 말이다.
자연철학자 마거릿 캐번디시 공작 부인은 대담한 철학을 담은 21권의 책을 펴내지만 돌아오는 건 비난과 조롱, 이에 그녀는 “박쥐와 올빼미처럼 장님으로 살고, 짐승처럼 노동하며, 벌레처럼 죽는 여성들 현실”에 분노하지만 “나는 학문에 조예가 깊지 않다. 그렇다고 나를 탓하지 말기 바란다.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 여성은 대학에 갈 수 없고, 아카데미 회원도 될 수 없으 며, 제대로 학문을 닦을 기회가 없으니까”라고 처지를 한탄하며 의기소침해진다.
“내가 왕이 되면, 인류의 절반을 봉인하는 악습을 뜯어고치 겠다. 나는 여성도 인간의 모든 권리, 무엇보다 배움의 권리를 누리게 할 것”이라고 단언했던 에밀리 뒤 샤틀레는 칸트가 수염부터 기르라 타박했던 바로 그녀로, 뉴턴의 《프린키피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옮긴 재원이 었으나, 볼테르의 연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미래의 여성 과학자들에게 용기를 줄 역할 모델들
그에 비해 평민 출신으로 알에서 애벌레, 고치에서 나비가 되는 곤충의 일생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남기고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를 작성한 마리아 지빌레 메리안은 한결 건강하고 씩씩한 삶을 꾸려가며 자신감과 독립심이 남달랐다. 더욱이 그모든 업적이 신의 덕이라고 자신을 낮춘 덕에 직접적인 공격이나 모욕을 면했으나, 사후의 평가를 보면 ‘조악하고 가치 없는’ 일을 한 그녀는 번번이 ‘현지 원주민들 미신에 현혹당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화려한 그림 솜씨로 내용을 부풀렸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밖에도 마리아 빙켈만과 마리아 쿠니츠 같은 천문학자, 도로테아 에르크스레벤, 도로테아 슐뢰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여성 과학자들의 삶을 되살려낸 저자의 작업은 마리 퀴리 밖에 몰랐던 독자들, 특히 역할 모델을 찾기 힘들었던 미래의 여성 과학자들에게는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책이될 것이다.
저자는 과학사 교수답게 철저한 고증을 통해 고대와 중세, 근대를 통해 모든 학문에서 여성을 배척하는 이론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왜 여성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20여 년 동안 여성의 과학 참여, 과학 제도의 체계, 지적 능력의 젠더라는 세 분야를 연관해서 연구해왔기 때문에 깊이 있는 설명이 가능했을 것이다. 최근에는 젠더 분석이 과학적ㆍ기 술적 창의력에 끼치는 영향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여성들이 특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저자다.
김재희
서강대에서 생물학과 독문학을, 독일 보쿰에서 인지과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 여성/환경운동에 동참하고, 서울예대에서 ‘예술과 과학’ ‘생명의 이해’를 가르 친다. 《신과학 산책》 《깨어나는 여신》 《지구 시인 레이첼 카슨》 등의 책을 썼고, 《파도》 《유전자 언어》 《생명의 느낌》 《아주 작은 차이》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