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의 가설과 실증이
세계를 움직인 까닭은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
(가마타 히로키 지음 | 정숙영 옮김 | 이정모 감수 | 부키 펴냄)
재직 중인 교토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의를 듣고 싶은 교수’로 첫손 꼽히는 가마타 히로키(謙田活毅) 교수는 화산학을 전공한 지질학자다. 그는 시대가 바뀔 때 중요한 역할을한 과학 고전 가운데 14권을 골라 거기에 담긴 과학의 본질과 내용을 쉽게 풀어 이 책에 담았다. “과학자들의 연구와 발견이 어떻게 세계를 움직였는지, 즉 당대에는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고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삶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 지를 알기 쉽게 엮”었다.
세계를 움직인 14권의 책들
그가 추린 과학의 고전은 다음과 같다. 다윈의 《종의 기원》 (송철용 옮김, 동서문화사), 장 앙리 파브르의 《파브르 곤충 기》(전10권, 김진일 옮김, 이원규 사진, 정수일 그림, 현암사), 그레고르 멘델의 《식물의 잡종에 관한 실험》(신현철 옮김, 지만지),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최돈찬 옮김, 궁리), 야콥 요한 폰 윅스퀼의 《생물로부터 본 세계》(미번역 추정), 이반 파블로프의 《대뇌 양반구의 작용에 관한 강의》(미번역 추정),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장헌영 옮김, 승산), 뉴턴의 《프린시피아》(전3권, 조경철 옮김, 서해문집),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장 헌영 옮김, 지만지), 에드윈 허블의 《성운의 세계》(미번역 추정),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의 《자연사》(미번역 추정),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미번역 추정),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과 해양의 기원》(김인수 옮김, 나남출판) 등이다.
이 책은 “이러한 과학 고전들의 역사적인 자리매김과 더불어 과학사뿐만 아니라 사상적, 철학사적 관점에서 그 의의를 설명하며, 어떠한 배경에서 그 책들이 등장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서술”한다. “구체적으로는 과학자와 과학책 소개, 관련 에피소드, 그 책이 세상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썼으며 과학 책의 핵심 내용”을 발췌했다. 그 책에 대한 칼럼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에 대한 소개를 덧붙여 현대의 관련 도서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소개된 책의 제목들은 친숙하다. 하지만 읽어본 독자는 드물 것이다. 이 ‘명물 교수’는 “각각의 과학책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을 현대의 말과 글로 풀면서 현대인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을 집어냈다.” 그러면서 아득하게 여겼던 과학의 고전들과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한 독자들을 21세기 과학적 상식과 사고법의 물길로 인도했으면 한다.
과학 고전 14권을 ‘생명을 이야기하는 책’ ‘환경과 인간을 생각하는 책’ ‘인간을 둘러싼 물리를 탐구하는 책’ ‘지구의 신비를 밝히는 책’으로 나눠 소개했다. 먼저 책을 쓴 과학자의 생애를 약술한다. 이어 내용을 파악하고 의미를 따진다. 또 과학적·사회적·역사적 의미를 짚는다. 한 대목을 인용한 뒤 다른 필자의 칼럼을 덧붙인다. 그리고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로 마무리 짓는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분야별로 내용을 살펴보자. 《종의 기원》은 ‘생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종의 기원》은 읽기 어려운 책이다. 읽다 보면 화도 나고 찰스 다윈이 미워진다. 다윈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읽기 어렵게 쓴 까닭도 있지만 번역의 문제도 크다. 젊은 학자 들이 새로 번역하고 있다고 하니, 일단은 좀 더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 다윈의 저서가 읽고 싶다거나 다윈과 친해지고 싶다면 우선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샘터사, 2009)와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갈라파고스, 2003)로 시작하 기를 권한다. 종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는 찰스 다윈의 원저보다 중학교 생물 교사 윤소영이 풀어 쓴 《종의 기원 - 자연선 택의 신비를 밝히다》(사계절, 2004)가 더 좋다. 다윈보다 종의 기원을 훨씬 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에서). 이 부분은 번역자가 우리 실정에 맞게 새로 쓴 듯싶다.
이반 파블로프의 《대뇌 양반구의 작용에 관한 강의》는 ‘환경과 인간을 생각하는 책’에 든다. “개는 음식물을 보면 침을 흘린다. 먹이를 줄 때마다 아무 이유 없이 종을 울린다. 이를 얼마간 반복하면 개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린다.” ‘조건 반사’ 실험이다. 개가 먹이를 보고 침을 분비하는 것은 타고난 반응으로 ‘무조건 반사’라고 한다. 이때 먹이는 무조건 반사를 이끌어내는 ‘무조건 자극’이다. 반면 종소리는 ‘조건 자극’이 다. “먹이를 주지 않았음에도 종소리만 들으면 침이 분비되는 반응을 바로 ‘조건 반사’라고 한다. 이 조건 반사가 이 실험의 근간이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은 먹이와는 전혀 관계없는 종소리(자극)만으로도 생리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로,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과학으로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가설과 실증
‘인간을 둘러싼 물리를 탐구하는 책’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원제목은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 (On the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역학의 전제가 되는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 이라는 개념을 뿌리부터 부정한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며 시공은 일그러져 있는 것”이라 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합친 개념인 ‘시공’을 제창하고, “시공의 결합이 우주를 지배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여기서 요점은 시간과 공간의 관계가 “절대적이지 않고 서로 밀접하다”는 것이다. 하여 “절대의 반대인 ‘상대’를 사용하여 ‘상대성 이론’ 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같은 시각의 상대성’이 라는 개념이 가장 본질적이라 할 수 있다.”
알프레트 베게너는 독일의 기상학자 겸 지구물리학자다.
1915년 베게너가 펴낸 《대륙과 대양의 기원》은 학계에 큰 논란을 몰고 온다. “우리들이 지도로 보고 있는 이 대륙들은 과거에 거대한 하나의 초대륙이었으나 지금처럼 각각 분리되어 이동한 것이 아닐까?” 1912년 무렵 베게너의 생각이다. 베게 너는 그가 공상으로 만들어낸 초대륙을 판게아(Pangea)라고 이름 붙였다. 서로 떨어져 있는 대륙이 옛날엔 붙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고생물학상의 가설은 이미 있었다. 베게너는 이를 대륙이동설이라는 학설로 발전시켰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과학으로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가설 설정과 실증 과정을 제대로 밟아 나”간 결과다.
최성일
1967년 인천 부평 출생. 인하대 국문과를 나와 3년간 백수로 지내다 〈출판저널〉 기자로 발탁됨. 일찌거니 프리랜서로 나섬. 지은 책은 《테마가 있는 책읽기》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전4권)》 말고도 두 권 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