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들, 넥타이 풀고, 다리 꼬고 만나다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
(하버드철학리뷰 편집부 엮음 | 강유원·최봉실 옮김 | 돌베개 펴냄)
요즘 시쳇말로 장사가 가장 안 된다는 인문학의 핵심이 철학 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인문학이 뭔가. 쉽게 말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것아니겠는가.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이지 그깟 것을 학문으로까지 탐구할 게 뭐람, 이러면 내가 이 리뷰를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 일단, 그래 탐구할 가치가 있어, 도대체 내가 누군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사실 남에게 내가 누군지를 설명하라면 제대로 못하잖아, 하는 정도의 동의는 필요하다.
그럼 독자들의 동의가 있다고 일방적으로 전제하고,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누가 뭐라든 내식대로 ‘철학이 무엇인 지’를 설명하자면, 철학이란 앞에서 말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갖가지 방법론이다. 철학의 ‘철’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네가 누구냐’는 물음에 하다못해 자신의 이름이라도 답한다면 그게 곧 철학하는 행위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 철학하는 방법만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 하여 철학자다. 그런데 이들 철학자들이 말하는 철학은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좀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사실이다. 에둘러 말할 것 없다. 솔직히 말해 잘 이해를 못 한다.
그런데 이 책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는 난해한 철학의 세계를 쉽게 편안하게 안내해 준다.
하버드대학생들이 엮은 14명의 세계 석학 인터뷰
이 책은 그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 학부생들이 자발적으로 창간했다는 철학 잡지 ‘하버드 철학 리뷰’에 실렸던 세계적 석학 14명과의 인터뷰를 묶은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인문서로는 기이하게도 요즘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 차트 상위권에 랭크된 《정의란 무엇인가》의 지은이 마이클 샌델(사실 그는 이 원고를 쓰고 있는 8월 20일 현재 우리나라를 방문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을 비롯해 《장미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 삶과 철학의 연관에 관한 해박한 지혜를 전개하는 코넬 웨스트,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이자 정치철학계의 거두인 하비 맨스필드, 칸트는 물론 철학사의 거의 모든 주제를 섭렵하며 미국에서 대륙 철학의 가치를 천착하고 있는 헨리 엘리슨, 그밖에 최근에 사망
한 실용주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나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했던 존 롤스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같은 보통사람이 철학자들의 사유 세계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책 내용이 인터뷰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들 철학자들의 저작(책이 아니고 굳이 저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색하고 읽어야 할 연구서를 의미하려는 의도)은 사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같아서 조금만 자세를 흩뜨리면 안 될 것 같아 읽는 내내 불편함은 물론 형식에 신경쓰다 보니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반면 대중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형식인 인터뷰는 넥타이 풀고, 다리 꼬고, 턱까지 괼 만큼 무장 해제를 하고 읽어도 누가 지적하지 않을 것 같은 형식의 자유로움이 장점이다.
형식이 자유롭다면 읽어야 하는 활자(사실은 말)도 소위 저서가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늘 만나는 단어들이 들어 있는 책이 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집어들 수 있다.
세계 석학들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14인 14색이라 할지라도 결국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문에 임하는 태도는 왜 중요한 가, 철학 교육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등에 관한 것으로 모아진다. 사실 이 같은 철학의 문제는 소크 라테스 이래로 철학자들이 계속 물어온 인간과 학문에 관한 근본적 문제들이다. 다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 달라졌을 뿐이다.
새로운 철학을 하려면…, 14인 14색의 해법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철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철학을 하려면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철학사의 지식이 선행되어야 하고, 과학적인 철학이라 할지라도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우러나는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점 등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학문(이론)의 영역과 삶(실천)의 영역, 보편적인 것(국가, 공동체)과 개별적인 것(개인), 형이상학과 과학, 철학사와 최근 이슈 등 극히 이원적으로 보이는 문제들에 대해 유기적으로 탐구하려 한다.
20세기에 이어 21세기 철학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 석학들과의 인터뷰는 단지 철학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법이나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뿐만 아니라 논리학, 형이 상학, 문학, 과학,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연계되는 다양한 주제들을 무시로 넘나들며 생생하게 다룬다.
또 하나 이 책의 미덕은 인터뷰(세계적 석학들)에 대한 개인 인물사를 압축적이고도 핵심적으로 짧게 개략하고 나서 본격적인 인터뷰의 질의 응답으로 들어감으로써 인터뷰이에 대해 따로 알아두지 않더라도 당연 먼저 읽게 되어 ‘그’에 대해 알고 난 뒤 자연스럽게 인터뷰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 다. 사실 어떤 사람의 사유 세계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사유 형성 과정, 즉 이력을 들춰보는 것이 우선되면 그 이해도가 훨씬 높아진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형식은, 더욱이 그들의 명성에 기죽은 독자들에게는 매우 유용해 보인다.
조성일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그만두고 우리나라 최초로 서평 전문 웹진 <부꾸>를 창간하여 직접 운영했다. 이어 잡지 출판을 하면서 계속 출판계 언저리에서 머물다가 지금은 신문이나 잡지에 서평을 기고하고 방송에 나가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등 출판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