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 국민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다. 태교로 독서를 시작하여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열심히 독서를 권하 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공부가 우선이라며 책 읽는 행동을 은근히 제지하는 부모가 많은 실정이다. 본지는 도서 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연령층인 유아,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와 그의 어머니를 위해 독서지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했다. 똑똑하고 지혜롭고 건강하고 배려심 있으며 경쟁에서 지지 않는 강한 정신력까지 갖춘 수퍼 어린이를 꿈꾸는 어머니들과 고민을 함께 하는 의미에서 이 기사를 준비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독서습관이 곧 학습능력이고 자기 주도형 학습이 가능한 아이로 성장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 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학원 순례길에 오르는 아이들에게 부과되는 일용할 숙제가 무서워 “책 그만 읽고 공부 좀 해”라는 벽력같은 호령이 성대 바로 아래까지 치받치는 순간을 참아내기가 힘들다. 독서가 중요하지만 바로 그 독서가 부담이 되는 아이러니.
아이 책은 어떻게 읽힐까 고민 많은 부모들에게
“우선 부모님부터 책을 가까이 하세요”
“책은 읽으라고 강요하면 절대 안 됩니다. 오히려 반발 심만 커지죠. 더구나 남들이 정해놓은 필독도서 같은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저 재미있는 책을 본인이 골라서 놀이처럼 읽고 그 행위가 즐거워서 또 다시 읽는 것이 반복이 되어야하죠. 가장 좋은 방법은 식구들이 함께 책을 읽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 속에서 소속감과 가족 애를 느끼고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막 한글을 익힌 유아에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까지 발달단계에 따른 독서지도에 대해 자문을 구하 고자 비영리단체 ‘도서관 친구들’을 이끌고 있는 여희숙 대표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듣게 된 결정적인 대목이었다.
시중에 필독도서, 전집류의 책들이 많지만 여 대표는 “독 서가 놀이이며 놀이가 생활인 형태가 가장 좋다”고 다시 강조한다.
“엄마와 길을 가다가 제비꽃을 봤다고 쳐요. 엄마가 말하는 거죠. “예쁜 제비꽃이 피었네. 이 꽃 저번에 책에서 봤지? 자세히 볼까?” 그리고 아이와 함께 제비꽃을 들여 다봐요. 그럼 아이는 길에 핀 제비꽃을 발견할 때마다 “엄 마, 제비꽃. 우리 전에 책에서 봤지?”하고 말할 거예요.”
엄마의 손을 잡고 걷던 길에 발견한 꽃 한 송이로 아이는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기쁨을 느끼며 대상에 더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엄마의 칭찬으로 강화된 호기심은 독서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에 좋은 책이 있으면 더좋겠죠. 좋은 책은 엄마가 읽고 고르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엄마가 되어야 하겠지요. 아이와 함께 도서관 나들이를 하고 독서모임에 참가하도록 독려하고 함께 책을 읽는 기쁨을 알아 가면 독서교육 절반은 끝난 거죠.”
엄마가 좋은 책을 판단하기 어렵다면 사서 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들께 좋은 책을 권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추천받은 책들을 놓고 아이와 함께 고르는 기쁨을 느끼는 것도 훌륭한 독서지도가 된다.
본격적인 책 읽기가 시작되는 초등학교 입학
“흥미를 잃지 않도록 지도해주세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책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죠. 아이의 독서능력이 학업성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에 요. 엄마들 중에 간혹 아이의 책 읽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현명한 엄마라면 독서가 그 아이의 학업능력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에게 책을 꾸준히 읽어주세요.”
여 대표의 말을 듣다보니 곤혹스러워졌다. 간단명료한 해법이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수퍼형 인간이 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나. 서둘러, 일하는 엄마들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싶어졌다.
“아이가 태어나 2000일이 되기 전까지 책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 경험이 훗날까지 이어진다고 해요. 《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이라는 책을 보면 바쁜 부모님을 대신하여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대목이 나와요. 직장맘이라면 이 방법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의 보호자가 여러 이유로 책을 읽어주기 어려울 경우, 아이를 돌봐주는 이에게 다른 어떤 일보다 책읽어주는 일을 우선적으로 해달라고 요청하라는 것이었다. 이해가 된다. 2천일이면 만 5년 반, 학령으로 따지면 유치원이거나 초등학교 1학년일 이 나이가 앞으로 계속 독서를 하는 인생일 것인가 아닐까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니 어른들이 아이들의 변화를 예민하게 지켜보고 좀 부지런을떨 필요가 있겠다 싶다.
“초등학교 1, 2학년 자녀라면 오히려 아이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에요. 그 나이의 어린이는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해요. 어른들도 아이가 글자만 읽는지 이해하고 읽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죠. 어려워하는 것 같다면 그때 수준을 조절하면 되겠죠.”
책은 어른들만 읽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독서를 다양하게 하라고 권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좋아 하는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해서 서서히 물이 들게 하는 것이 훨씬 책과 가까워지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학교에 들어가면 교과서, 교재 등 읽을거리가 너무나 많아지죠. 이때는 학교에서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조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아침독서 15분’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책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자꾸 읽고 싶고 쉬는 시간에도 꺼내어 읽게 되면 그 아이의 독서력은 스스로 길러지고 있다고 봐도 되는 겁니다.”
사춘기 초기 초등학교 고학년
“책모임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토론회나 독서모임 등을 구성하는 것도 좋다. 책을 정해서 같이 읽고 인상적인 대목에 밑줄을 그어 낭독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임을 권한다.
“독서모임에 오는 6학년생이 있었어요. 그 아이는 “재미 있었습니다” 한 마디만 하고 입을 꾹 다무는 아이였어요. 그러나 계속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말문이 트여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왕따나 교내폭력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도 독서모임은 아주 훌륭하다고 봅니다. 자기 이야 기를 하다보면 치유가 되고 그 에너지는 서로를 이해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충청남도 청양의 정산중학교 (담당 최은숙 선생님)는 전교생이 15명씩 그룹을 지어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독서가 교내폭력과 인성문제마저 해결할 수 있다니, 내심 아이에게 숙제를 시키듯 읽힐 필독도서 목록 정도를 기사로 쓸 요량으로 여 대표를 만났던 기자가 무안해졌다.
“엄마들을 대상으로 독서모임을 많이 하는데 책을 안 읽고 20여 년 살다가 책을 다시 읽으려니 쉽지 않다고 해요.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인생의 공허함을 무엇으로 메우나 싶었 는데 바로 독서가 그것을 해결해주었다는 말들을 많이 해요. 그래도 혼자 읽기란 쉽지 않아요. 어머니독 서학교를 만든 계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읽는 것과 혼자 읽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작년에 광진구 관내 초등학교 학부모 대상 독서교육 강좌를 했었는데 엄마들이 하는 말은 ‘엄마가 읽은 책 이야기를 가족에게 재미있게 해주었더니 가족 전체가 책을 읽더라’는 것이었어요. 이게 가장 좋은 독서교육 방법 아니겠어요.”
독서모임을 하고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는 엄마들이 많다. 우선 가족 간에 대화가 많아졌다고 한다. 엄마가 먼저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그 책을 읽기 시작한다. 아빠들도 관심 없는 척 하면서 그 책을 본다. 그러면 공통의 화제가 생기므로 식사시간만이라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여 대표는 최근에 들은 이야기 라며 깜찍한 ‘초딩 2학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 회원들에게 숙제를 내줍니다. ‘가족 중 누구에게나 15분씩 책을 읽어주세요’ 하고 말이죠. 책을 싫어하던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엄마가 책 읽어 주는 시간이 얼마나 싫었는지 15분 타이머를 맞춰 놓고 알람이 울리면 벌떡 일어섰다고 해요. 이틀이 지나자 아이가 묻더래요. “엄마, 다른 가족에게 읽어주면 안 돼?” “그건 안 되겠는데? 한 사람에게만 읽어주는 숙제라서….” 아이는 복잡한 얼굴이 되었답니다. 엄마는 모르는 척 계속 책을 읽어주었죠. 닷새가 되던 날, 아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 앞에 나타났대요. “엄마, 오늘 15분은 좀길거야.” 영문을 모르는 채 엄마는 평소처럼 책을 읽어나 갔다고 해요. 그런데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매일 꽁무니를 뺄 준비만 하던 아이도 집중하는 폼이 여느 때와는 달랐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알람은 15분이 아닌 1시간 만에 울렸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 댁 독서교육은 끝이 났죠.”
이제는 천편일률적인 필독도서 목록에서 벗어나야 할때인 것 같다. 독서가 숙제가 되어서도, 짐이 되어서도 안된다. 남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힌트로만 삼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독서의 달인으로 재탄 생시키려면, 엄마(또는 아이의 보호자)가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야 한다.